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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반려물건 소개

by editor54875 2025. 8. 16.

우리 집 반려물건 소개에 대해서 작성해볼게 

– 물건에도 감정이 있다면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유난히 손이 먼저 가는 물건들이 있다. 머리로는 “그냥 물건”인데, 몸은 이미 알고 있다. 여기서 마시면 더 맛있고, 이걸 메고 나가면 하루가 덜 번잡하고, 그 빛 아래 앉으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는 걸. 나는 이런 걸 반려물건이라고 부른다. 키우는 건 아니지만, 같이 산다는 느낌이 드는 것들. 오늘은 내 반려물건 몇 가지와, 왜 이 녀석들이 내 일상을 붙잡아 주는지 적어본다.

우리 집 반려물건 소개
우리 집 반려물건 소개

1) 반려물건이 되는 순간

— 비싸서가 아니라, 손에 남는 이유가 있을 때 내가 보기엔 반려물건이 되는 조건은 세 가지 정도다.

반복

자주 쓴 것만 남는다. 한 번 감탄했던 물건보다, 매일 무심코 잡아드는 물건이 훨씬 오래 간다. 어쩌다 쓰는 고급 그릇보다, 아침마다 손이 가는 유리컵이 반려물건이 되기 쉽다.

맞음

손에 닿는 감촉, 무게, 크기, 사용 리듬이 나한테 맞아야 한다. 말로 설명하긴 애매한데, 잡았을 때 “여기야” 하는 느낌이 있는 물건들. 컵은 림 두께, 펜은 무게중심, 가방은 끈 폭 같은 디테일에서 갈린다. 취향이 아니라 신체와의 합에 가깝다.

기억

같이 보낸 시간의 흔적이 쌓이면, 기능을 넘어 맥락이 붙는다. 어디서 샀는지, 누구랑 있었는지, 그때 무슨 계절이었는지. 그래서 반려물건은 새 것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흠집이 가볍게 생기면서 내 편이 된다. 비싸고 유명하다고 자동으로 반려물건이 되진 않는다. 반대로 싸고 평범해도, 매일 내 리듬을 받아주는 물건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반려물건은 선택의 피로를 줄여준다. “오늘은 뭘 쓰지?” 대신 “늘 그거”가 있으니까,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2) 내 반려물건 4가지

— 아침, 이동, 일, 밤. 하루의 네 모서리를 붙드는 것들

① 얇은 림의 투명 유리컵(250ml) 아침 미지근한 물 한 컵을 이걸로 마신다. 림이 얇아서 물이 혀끝으로 조용히 들어온다. 큰 의미 없어 보이지만, 이 컵을 쓰면 하루 첫 동작이 부드러워진다. 가끔 립 자국이 얇게 남는데, 닦을 때 나는 그 유리 마찰 소리까지 익숙하다. 깨지면 똑같은 걸 또 산다. 이건 대체불가가 아니다. 대체가능해서 편하다. 중요한 건 리듬의 유지다.

② 캠퍼스 천가방(폭 넓은 끈) 노트북 가방을 여러 개 써봤지만, 결국 이 천가방으로 돌아온다. 끈 폭이 넓어서 어깨가 덜 아프고, 입구가 넓어 책을 휙 넣고 뺄 수 있다. 비 올 땐 모서리가 좀 젖는다. 그래도 좋다. 내 생활 속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게 만드는 건, 그만큼 쓰는 리듬을 덜 끊기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엔 빵 하나와 우산만 들어 있고, 어떤 날엔 노트북·충전기·책 두 권이 꽉 들어 있다. 매번 다른 내용물인데, 가방의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③ 로터리 스위치 탁상 스탠드 딸깍하고 돌아가는 그 촉감 때문에 산 스탠드다. 색온도는 따뜻한 쪽. 밤에 책을 펼치면 페이지가 노랗게 살아난다. 이 빛 아래서는 괜히 SNS를 덜 켜게 된다. 빛이 하는 말이 다르다. ‘올려다보지 말고, 내려다보라’고 말하는 느낌. 퇴근 후 30분만 켜도, 방의 성격이 잠깐 바뀐다. 업무의 방이 아니라 휴식의 방으로. 그래서 이 스탠드는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상태 전환 장치에 가깝다.

④ 잉크 흐름 좋은 0.5 펜 + 얇은 줄 노트 비싼 만년필보다 이 조합이 나와 맞다. 오늘 해야 할 일 3개를 적는 데 목적이 맞춰져 있다. 잉크가 미끄러지듯 나오고, 노트 종이는 너무 매끈하지 않아서 글자가 딱 거기 멈춘다. 적고 줄 긋고, 끝난 건 동그라미. 쓰는 순간 다음 동작이 걸린다는 점이 좋다. 기록이라기보다는 행동의 트리거에 가까운 문구류다. 이 네 가지는 내 하루의 모서리를 붙들어 준다. 아침 물, 이동, 일, 밤. 이 네 포인트가 흔들리면 하루가 쉽게 쏟아지는데, 이 물건들이 각자 작은 쐐기처럼 자리를 만들어 준다.

3) 반려물건을 오래 쓰는 법

— 수리, 대체, 기록. 버리기 전에 할 수 있는 세 가지 수리: 완벽 복원 말고 ‘생활 복구’ 가죽 끈이 헤지면 동네 수선집에서 덧댄다. 유리컵은 칩이 나면 위험하니 교체하지만, 가방은 보기 좋은 복원보다 튼튼한 덧댐을 택한다. 스탠드는 스위치가 헐거워지면 접점 세척을 해본다. 완벽한 새것이 목표가 아니라, 다시 쓰게 만드는 기능 복구가 목적이다. 수리의 흔적은 그 물건이 내 쪽으로 더 기울어진 증거처럼 느껴진다. 대체: 같은 것 또 사기, 또는 ‘내 쪽으로 한 칸 더’ 반려물건을 잃어버리면 같은 걸 다시 산다. 다만 쓰면서 불편했던 점을 한 칸 보완한다. 컵은 같은 모델이되 용량만 50ml 더 큰 걸로, 가방은 똑같은 디자인에 안주머니 추가 버전으로. “더 비싼 것”이 아니라 내 쓰임새로 미세 조정하는 방향. 이러면 새 물건이 와도 리듬이 끊기지 않는다. 기록: ‘왜 좋은지’ 한 줄 남기기 새로운 걸 들인 날, 노트에 한 줄 남긴다. “림 얇아서 물맛이 깨끗함.” “끈 넓어 어깨 편함.” “딸깍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힘.” 이런 원인 기록이 있어야 나중에 대체할 때 헤매지 않는다. ‘감성’이라고 뭉뚱그리면 다음 선택이 흐려진다. 반려물건은 운명처럼 나타나기도 하지만, 사실은 조건을 알면 재현 가능한 선택에 가깝다. 그리고 가끔은 정리가 필요하다. 반려물건이 늘어나는 순간, 사실은 반려물건이 아니라 미래의 짐을 모으는 중일 수 있다. 이럴 때 기준은 간단하다. 최근 30일에 몇 번 썼나? 0~1번이면 후보. 대신 보내며 사진 한 장 남기고, 왜 안 맞았는지 한 줄 적는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마무리

반려물건을 갖고 산다는 건, 크게 보면 선택을 덜 하겠다는 선택이다. 그게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중요한 데 쓸 힘을 남긴다. 아침 물은 늘 그 컵, 일은 늘 그 펜, 밤은 늘 그 빛. 이렇게 고정된 지점이 있으면 하루가 덜 흔들린다. 물건이 내 삶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통해 내 리듬을 다시 붙잡는 느낌. 그래서 가끔은 새 것보다, 잘 길든 것들이 더 든든하다. 오늘도 컵을 씻어 제자리에 놓고, 가방 끈을 한 번 쓸어내리고, 스탠드 스위치를 딸깍 돌린다. 별 일 아닌 동작들로, 하루의 윤곽이 다시 선명해진다.